아이에게 조언하고 싶어질 때, 아빠가 먼저 점검해야 할 기준

BrotherBong

2026년 01월 12일

아이에게 조언하고 싶어질 때, 아빠가 먼저 점검해야 할 기준

― “모든 조언은 자전적이다”

이 글은 아이에게 조언을 해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아빠를 위한 글이다.
특히 아이의 행동이 말썽처럼 느껴질 때 도움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즉각적인 안전 문제가 있는 상황이라면 이 글의 기준은 맞지 않을 수 있다.


아이가 말썽처럼 보일 때,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것

첫째 아이가 여섯 살이 되었다. 흔히 말하는 ‘미운 여섯 살’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미움과 귀여움이라는 양가적인 감정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하지 말라는 일은 귀신같이 골라 하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위험을 기어이 발굴해낸다.
이때 부모는 묻게 된다.

“이걸 바로잡아야 하나, 그냥 두어야 하나.”


아이의 행동은 본성이 아니라 ‘투사’일 수 있다

요즘 첫째 아이는 장난감 칼을 휘두르는 걸 좋아한다. 그럴 때마다 엄마의 “하지 마”라는 말이 늘어난다.
아이의 행동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서늘한 자각이 든다.

아이의 장난감, 아이에게 멋지다고 보여준 영화 장면들, 그리고 나의 취향.

아이의 행동은 그 자체의 본성이라기보다 부모가 투사한 욕망의 반사일 수 있다.


모든 조언은 ‘아이를 위한 말’이 아니라 ‘자기 고백’이다

모든 조언은 자전적이다.

모든 조언은 자전적이다.
누군가에게 조언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이 아니라 과거의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있다.

이 문장을 기준으로 보면, 아이에게 건네는 많은 말은
아이의 현재가 아니라 부모 자신의 과거 경험에서 출발한다.


부모의 조언이 위험해지는 순간

부모는 흔히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를 아이에게는 겪게 하고 싶지 않아 한다.
하지만 아이의 성장 과정은 부모의 과거를 복제하는 과정이 아니다.

아들 둘을 키워보니,
이 시기의 아이들은 거의 짐승에 가깝다.
어린 동물이 부딪히며 적당한 거리를 배우듯, 아이 역시 겪으면서 질서를 만든다.

이때 부모의 조언은 안전 장치가 될 수도 있지만, 배움의 기회를 제거하는 칼이 될 수도 있다.


아이는 함수가 아니라 아티스트다

IT 개발자로 살아온 나는 세상을 입력과 출력의 논리로 이해하는 데 익숙했다.
하지만 아이는 입력값대로 작동하는 함수가 아니다.

아이는 세상의 자극을 흡수해
자기만의 색으로 다시 표현하는 아티스트에 가깝다.

내가 취업하던 시절의 정답이 지금 아이에게도 정답일 리 없다.


그렇다면 조언은 언제 해야 할까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조언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조언의 기준은 하나다.

이 조언이 아이의 현재를 돕는가, 아니면 부모 자신의 과거를 정리하려는가.

  • 아이의 안전을 즉시 위협하는 상황인가
  • 아니면 부모의 불안을 달래기 위한 말인가

이 구분이 흐려질 때, 조언은 아이를 위한 말이 아니라 부모를 위한 말이 된다.


관찰은 통제보다 오래 남는다.

아이에게 조언하고 싶어질 때,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은 아이의 행동이 아니라 부모의 동기다.

  • 아이는 함수가 아니다
  • 조언은 대부분 자전적이다
  • 관찰은 통제보다 오래 남는다

그래서 나는 조언보다 관찰을 택하려 한다.
아이의 행동을 고치기보다, 나의 동기를 먼저 들여다보는 쪽을 선택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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