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고백: “솔직히 아기가 예쁘지 않아요”… 부성애 없는 아빠, 비정상인가요?

BrotherBong

2025년 09월 17일

부성애 자동 설치, 직접 실험해봤다

나는 항상 궁금했다. 부성애는 자동으로 장착되는 것인가? 솔직히 아기를 좋아하는 남자는 극히 드물다. 나는 ‘드물지 않은 쪽’, 아니 ‘극히 아닌 쪽’이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공공연하게 말했다. “내가 직접 찍어 먹어보고, 나 같은 남자도 부성애가 자동 장착되는지 알려주마!”

그리고 마침내 첫 아이가 태어나던 날, 그 거대한 실험의 막이 올랐다. 머릿속으로 수없이 그렸던 벅찬 감동, 숭고한 부성애 같은 건 없었다. 큰일 났다. 실패다. 나는 역시 아이를 좋아할 수 없나 보다. 아기는 천사보다는 그냥 밭에서 갓캔 고구마 같았다. 오동통하고 빨갛고. 아내의 얼굴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모성애가 피어오르는데, 내 마음속 ‘부성애’는 아직 설치 오류가 난 프로그램 같았다. 그 순간, 내 마음을 가장 크게 흔든 질문은 이것이었다. ‘나는 나쁜 아빠일까?’

부성애는 사랑이 아니라 ‘전우애’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에게 부성애는 사랑이 아니었다. 잠과 사투를 벌이며 함께 밤샘 작전을 수행하는 동료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과 ‘동지애’. 솔직히 말해 그건 ‘전우애’에 가까웠다.

아이가 울면 기저귀를 갈았다. 분유를 먹였다. 밤을 새워가며 안아줬다. 이 모든 행동이 ‘아빠의 의무’라 생각했다. 뭔가 익숙하면서도 구린 느낌. ‘국방의 의무’가 떠올랐다. 특히 10달 동안 아이와 한 몸이었던 아내와 아이 사이의 끈끈한 유대감을 볼 때면, 나는 마치 육아 전투의 조력자나 외부인처럼 느껴졌다. ‘육아 소외감’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전우애’가 ‘찐사랑’으로 바뀌기 시작한 순간들

혼란스럽던 감정의 안개가 걷힌 것은 아주 사소한 순간들이 쌓이면서부터였다. ‘전우애’라는 단단한 씨앗에서 진짜 사랑의 싹이 트기 시작한 것이다.

  • 나를 향한 첫 미소. 밤샘 육아에 지쳐 퀭한 눈으로 아기 침대를 내려다보던 순간. 무심코 아이와 눈이 마주쳤는데, 아이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나라는 존재를 정확히 인식하고 보내는 첫 번째 신호. 그때였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온몸의 피로가 녹아내리는 기분. 이게 뭐지?
  • ‘아빠만 할 수 있는 일’이 생겼을 때. 이상하게 아빠 품에서만 가장 편안하게 잠들 때. 아빠가 해주는 목욕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할 때. ‘나만 할 수 있는 일’이 생기면서 나는 단순한 조력자가 아닌, 아이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감을 느꼈다.
  • 온몸으로 놀아주며 쌓이는 유대감. 번쩍 들어 비행기 태워주고. 목말 태워 온 집안을 누비고. 아이의 까르르 웃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어떤 피로회복제보다 강력했다. 스킨십과 상호작용은 부성애를 키우는 최고의 자양분이었다.

과학이 증명한 ‘전우애’의 비밀

아빠의 사랑은 왜 ‘전우애’로 시작될까? 여기에는 놀라운 과학적 근거가 있다. 엄마는 열 달의 임신과 출산이라는 절대적인 시간을 통해 아이와 먼저 유대를 쌓는다. 아빠의 사랑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만들어가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아빠가 아기와 놀아주거나 기저귀를 가는 등 스킨십을 할 때 ‘애착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분비된다. 즉, 아빠가 느끼는 ‘전우애’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다. 아이를 돌보는 ‘행동’을 통해 뇌의 **‘부성애 스위치’**가 켜지는 지극히 생물학적인 과정의 시작인 것이다. 함께 고생하는 ‘육아 전투’가 우리 몸을 진짜 아빠로 만들고 있었던 셈이다.

‘전우애’를 ‘찐사랑’으로 키우는 실전 전투 가이드

부성애는 ‘느끼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다. 사랑해서 돌보는 게 아니라, 돌보다 보니 사무치게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서툴러도 괜찮았다. 일단 ‘전투’에 참여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 기저귀 & 목욕 전투: 매일 마주하는 가장 기본적인 전투다. 아내에게만 맡기지 말고 직접 부딪혀봤다. 특히 저를 닮아 우량아인 아들들은 엄마 혼자 감당하기 벅찬 무게를 선사하기에, 아빠의 지원사격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 옹알이 통역 전투: 의미 없는 소리처럼 들려도, 눈을 맞추고 진지하게 대답해줬다. 그런데 나는 경상도 남자라 잘 못한다. 그래서 그냥 아기의 옹알이 소리를 흉내 내는 것으로 화답했다. 통하나? 웃는다. 일단은 이걸로 되었다.
  • 몸으로 놀아주기 전투: 아빠만이 할 수 있는 역동적인 신체 놀이는 아이의 뇌 발달에 필수적이다. 왜 어릴 때 다들 후뢰시맨 놀이 하지 않았는가. 아차차. 연배가 나오는 순간 같다. 우리 아이의 경우는 트랜스포머이다. 아빠의 유치한 로망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신체 놀이가 완성되었다.

새벽 3시, 우리는 전우였다

이제 다시 새벽 3시의 풍경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 시간은 더 이상 외로운 사투가 아니다. 울음소리마저 사랑스럽고, 서툰 손길로 기저귀를 가는 그 순간이 아이와 나, 둘만의 비밀 작전 시간처럼 느껴진다. 끈끈한 유대감이 쌓이는 가장 소중한 순간이 된 것이다.

혹시 지금 과거의 나처럼 혼란스러워하는 초보 아빠가 있다면, 자신 있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느끼는 그 막막한 책임감과 벅찬 전우애가 바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부성애의 다른 이름이라고 말이다.

마침내 오랜 실험이 끝났다. 결론은 ‘남자의 부성애는 자동으로 설치되지 않는다’였다. 심지어 OS도 다른 Mac에 윈도우를 까는 것처럼 버겁고 어색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장담컨대, 그 모든 과정을 거쳐 한번 설치된 ‘부성애’ 프로그램은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강력했고, 아빠라는 남자를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부팅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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