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조언은 자전적이다 : 아이라는 우주를 그저 관찰하자

BrotherBong

2026년 01월 08일


​첫째 아이가 여섯 살이 되었다. 흔히 말하는 ‘미운 여섯 살’이다. 하지만 아이를 관찰 하다 보면 미움과 귀여움이라는 양가적인 감정 사이에서 길을 잃기 일쑤다. 하라는 것은 하지않으며, 하지 말라는 일은 귀신같이 찾아내고, 하지 않아도 될 위험을 기어이 발굴해내는 존재. 혼내다가도 헛웃음이 터져 나오는 이 혼돈의 존재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아이, 거울에 비친 나의 욕망

아이 관찰 하면 어려서도 칼을 좋아하고

​요즘 아이는 6살의 의례 그렇듯, 칼 휘두르는걸 좋아한다. 그렇게 엄마의 “하지마”도 늘어간다. 아이의 말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문득 서늘한 자각이 든다. 아이가 휘두르는 장난감 칼의 궤적은 사실 나의 욕망이 그려낸 선이다. 내가 사준 장난감, 내가 멋지다고 치켜세웠던 영화 속 장면들(주로 스타워즈를 많이보긴 했다만), 그리고 나의 취향을 아이에게 들이부었던 결과다. 아이는 그저 내가 투사한 ‘인위적인 그림자’ 를 충실히 재현하고 있을 뿐이다.


​노자(老子)는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고 했다. 본래 아이의 본성은 흐르는 물과 같아 머무름이 없고 걸림이 없다. 하지만 부모는 ‘교육’이라는 명분 아래 자신만의 수로를 파고, 아이라는 물줄기를 그 좁은 길로만 흐르게 하려 애쓴다. 지금 내가 목격하는 아이의 말썽은, 어쩌면 내 과거의 집착이 아이라는 맑은 거울에 반사되어 돌아온 응답일지도 모른다. 그 맑은물에 반영된 내얼굴에 묻은 검댕이에 화들짝 놀라 애꿎은 물에 돌만 던져 파문을 일으키는 셈 아닐까

​조언이라는 이름의 과거 고백

남자는 머리가 커도 칼같은 막대기 보면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우리는 아이에게 끊임없이 조언한다. “칼싸움을 할 때는 이렇게 해야지”, “얼굴은 위험해”. 물론 안전을 위한 방편이지만, 그 본질을 살펴야 한다. 누군가에게 건네는 조언은 사실 당신이 아니라 ‘과거의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회한 섞인 독백이다.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세상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홀로 존재하는 것이 없다(연기). 내가 겪은 과거의 경험을 아이의 미래에 억지로 대입하려는 시도는, 결국 ‘나’라는 틀에 갇힌 집착이다. 아들 둘을 키워보니 지금 시기는 거의 짐승에 가까운데. 어린 동물이 서로 부딪히며 ‘적당함’을 배우듯, 아이들도 직접 겪으며 스스로의 질서를 찾아간다. 부모의 섣부른 조언은 그 배움의 기회를 혹은 얻어질수 있었던 즐거움을 뺏는 일이 될 수 있다. 발생할수 있었던 아이의 새로운 우주를 부모의 과거의 경험과 선입견으로 없애버리는 걸지도 모른다.

모든 조언은 자전적이다. 누군가 당신에게 조언을 할 때 그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과거의 자기 자신에게 조언하는 것이다.

​입력값대로 나오지 않는 아티스트

​IT 개발자로 살아온 나는 세상을 ‘입력과 출력’의 논리로 바라보는 데 익숙했다. 하지만 아이는 내가 입력한 코드대로 작동하는 함수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의 모든 자극을 흡수하여 자신만의 색채로 뱉어내는 아티스트에 가깝다. 내가 취업하던 시절의 ‘정답’이 지금 아이에게도 정답일 리 없다. 나의 조언이 아이의 앞길을 밝힐지, 아니면 발목을 잡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결국 나의 모든 말은 ‘과거의 나라면 이랬을 텐데’라는 뒤늦은 고백일 뿐이다.

​2026년, 관찰이라는 이름의 수행

아이가 곧 나의 연장이다.

​될수도 있고, 안될수도 있다. 조언을 그럼 하라는거냐 하지 말라는거냐 라고 묻는다면 그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고 모든것은 변하기 마련이니 무의미 하다고 할수 있다.
지금 내 생각도, 내 육신이 지친다면 폭군으로 변할수도 있고, 내 육신이 평온한 날이면 한없이 자애로운 성인처럼 변할것이다.

다만 기준을 세워야 한다면, 아이는 내가 입력한대로 출력나오는 함수가 아니라는 점. 스펀지처럼 세상 모든것을 융합해서 자신만의 것을 내어놓는 아티스트라는 점. 그리고 나의 과거로 부터 섣부른 조언이 아니라 아이의 현재를 진심으로 관찰하고 아이의 관점으로 부터 배워볼것

​오늘도 나는 아이에게서 배운다. 세상에 고정된 정답은 없으며, 오직 매 순간 깨어 있는 마음으로 서로를 마주하는 인연만이 소중함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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